sophiekim :  1  2  3  4  8  9  11  12  손님  사용법  시간을 무시하는 기록  2011  2012  2013 

오늘의 일기: 두 개의 기억

1. 아침에 깨서 알람을 끄는 대신 스누즈를 해놓고 조금 밍기적거리다가 샤워를 하러 갔다. 그런데 옷을 벗는데 알람이 다시 울리는 거다. 그래서 옷을 벗다말고 방으로 뛰어가서 알람을 껐다. 이런 일이 종종 있기 때문에 샤워를 하다 보면 물소리 너머로 알람소리가 들리는 듯한 느낌을 자주 받는다. 오늘도 샤워를 하다가 정말로 알람이 들리는 것 같아서 물을 껐는데 알람은 울리고 있지 않았다.

2. 일을 하러 가서 제일 처음 섭취한 게 오늘은 커피였다. 원래도 달게 먹지는 않지만 오늘은 특히나 커피에 우유만 넣어서 먹는다는 걸 의식하면서 첫 모금을 딱 마셨는데, 그 맛이 거짓말 안 하고 스페인에서 걸을 때 아침마다 꼭 사먹던 까페 꼰 레체 맛이랑 똑같아서 그 순간 문자 그대로 감동을 느꼈다.

3. 퇴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자리에 앉아 멍을 때리는데, 바람이 불었는지 갑자기 환청 같은 게 들리면서 서울 지하철 안내방송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러자 정말 시야가 서울 지하철 안으로 확 바뀌면서 순간 꼭 서울에 있는 듯한 기분이 됐다. 그 순간이 지나가고 나니까 조금 울컥했다.

4. 가게 사장님이 두 분이 계시다. 주말 중 하루는 큰 사장님과, 하루는 작은 사장님과 일한다. 큰 사장님은 일주일에 단 하루 쉬는 날마다 꼭 골프를 치신다. 코스가 눈에 덮히지만 않으면 비가 오건 바람이 불건 무조건 치신다. 최근에 빠지신 다른 것들에는 묵향과 시크릿가든이 있다. 하지원보다는 현빈에 더 깊은 인상을 받으셨다. 주중에 일하는 언니 두 분 중 한 분이 시댁이 하는 세탁소를 물려 받게 되었다고 일을 그만둔다고 했다. 그래서 새로 평일에 일할 사람을 구했는데, 큰 사장님보다 나이가 두 살 적은, 말하자면 아줌마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분이 딱 이틀 일하고 이 일은 젊은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라 그러면서 힘들어서 못 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사장님이 요새 왜 이렇게 눈물이 잘 나는지, 어제 그 사람 보내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냐? 요즘 왜 이렇게 잘 우는지 이 것 참 큰일이야, 하시는데,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는 일이고 사장님 말투도 전혀 장난스러웠지만 그래도 좀...


2011 / 2 / 김소피
**** 2011.02.26

까페꼰레체ㅠㅠ 바로 그 맛의 감동! 물론 같지는 않겠지만 나도 그랬던 기억

난 스페인에서는 걸핏하면 까페솔로를 시켜마시곤 했는데

커네티컷에 가서 어느 중국집에 갔다가 그 옆에 붙어 있는 가게에서 모카포트를 발견하고 그 옆에 최저가 진공팩 남미 커피랑 같이 사다가 첫 샷을 내렸는데, 완전 손잡이도 태우고ㅎㅎ 패킹 빼먹어서 물이 막 옆으로 새 나오고 난리였거든 그런데 그 난리를 치고 두 번째로 뽑아서 마신 그 때! 정말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 맛이 그 맛일리도 없지만) 정말 에스빠뇰 까페 솔로의 맛이 나서 순간적으로 정신이 혼미해지고 온통 커피만으로 휩싸였던 때가 있었다


읽으니까 완전 팍 와닿길래 써 봤음 

김소피 2011.03.01

까페 솔로는 뭐야????????? 그나저나 너는 어떻게 삶????????????

김소피 2011.03.10

까페 솔로가 뭐냐고 ㅠㅠ 말해줄때까지 검색은 하지 않을 테다

**** 2011.03.11

저 지금 죄책감 쩔어여....


까페 솔로는, 아메리카노 따위, 마드리드 쯤 가 줘야 가뭄에 콩나듯 있는 스타벅스에 가서 처드시라는 스페인 사람들의 자존심, 물 한 방울 안 탄 에스프레소 입니다 오직 커피(솔라멘떼)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추정됨 항상 데미타스에다가 줘요 유럽에서는 다크초콜렛 한 조각과 함께 주는 곳이 많음


검색도 제가 대신 (굽신굽신) http://en.wikipedia.org/wiki/Espresso 

이 중에 한 줄 나와여

김소피 2011.03.18

친절한 검색 감사

리드머 인터뷰

일단 본 인터뷰를 편집한 사람으로서 진보 씨와 리드머 여러분에게 사과의 말씀부터 전한다. 닥터 드레(Dr.Dre)의 [Detox]와 리드머 재오픈(일명 ‘리톡스’)만큼이나 오랜 기다림을 안긴 것에 대해서…. 하지만, 인터뷰를 읽으면서 기다림에 대한 불만이 사라질 거라 확신해본다. 이 인터뷰에는 진보의 여러 모습이 담겨 있다. 자신의 음악세계를 이야기하는 뮤지션으로서 진보, 인디 씬에 대한 견해를 건설적으로 설파하는 인디펜던트 아티스트 관련 학문 전공자로서 진보, 그리고 딥한 감상을 좋아하는 음악 마니아로서 진보. 서문에서 그에 대한 설명을 따로 하진 않겠다. 여기 2010년 [Afterwork]와 [Mind Combined]로 자신을 증명한 뮤지션 진보의 사골국물 같은 이야기가 그걸 대신해주고도 남을 것이기에….

리드머(이하’리’): 이름이 인상적입니다. ‘진보적인 음악을 하겠다.’는 의미로 지은 게 맞나요? 아니면, 또 다른 뜻이…?
진보: 전 항상 다른 사람과 경쟁보다도 스스로 잘하고 싶은 욕구가 있어요. 새로운 것들을 계속해서 하고 싶거든요. 그것을 어떻게 이름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말 그대로 ‘진보적이다.’라는 뜻으로 진보라는 이름을 정하게 되었어요. 더 많은 시간이 지나고 많은 경험이 쌓일수록 나아져야 한다는 생각을 이름에 담고 싶었죠. 영어나 한글로 발음할 때도 음절이 두 개라 편하고 한자로도 쓸 수 있어서 좋고요. 그리고 어떻게 표기하던 의미가 변하지 않아서 좋고요.

리: [Call My Name]이 나오고 군복무 및 여러 뮤지션의 프로듀싱과 피처링을 거쳐서 근 5년 만에 [AfterWork]를 발표했었어요. 그 뒤에 [Mind Combined], 일진스(Ill Jeanz) 앨범이 나왔고요. 올해 행보가 굉장히 바빴는데, 모든 게 계획했던 작업들이었나요?
진보: 작업은 쭉 진행하고 있었지만, 2010년에 앨범을 3장이나 몰아서 내야겠다는 계획은 없었어요. 그 전에 소속사에 묶여있을 때는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었거든요. 아무래도 대중적으로는 내놓을 수 없는 음악을 만들다 보니 어떤 면에서는 좌절하기도 했죠. 당시 준비하던 앨범도 있었는데, 폐기처분 돼서 없어지기도 했고요. 그래도 계속 작업을 하고, 소속사와 계약해지를 하고 나오면서 슈퍼프릭 레코드(Superfreak Record)를 만들고, 그 전부터 내놓지 못했던 것들을 자연스럽게 새로 작업한 것들과 모아서 [AfterWork]를 냈던 거예요. 이 앨범의 어드바이저(Advisor)로 되어있는 문준이라는 친구가 라임버스의 피제이(PJ)형하고 저하고 셋이서 친하게 지내고 있던 차에 A&R 역할을 했고요. 뮤지션과 프로듀서를 연결해주는 역할이 A&R의 역할이거든요. 그 친구가 피제이 형하고 제가 음악적인 색깔이 굉장히 어울린다는 걸 발견한 거였죠. 그래서 저한테 둘이 한번 작업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연결을 해줬고요. 리: 어쨌든 정말 간격이 짧았는데, 준수한 앨범을 만들어낸 게 인상적입니다. 진보: 마침 제가 올 3월에 미국유학이 결정돼서 시간이 얼마 없는 상황이라 괜한 시간 보내지 말고 계속 작업을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앨범작업을 마친지 2주가 안된 상태에서 바로 [Mind Combined] 작업을 하게 되었죠. 녹음을 2주정도 하고, 믹싱, 마스터링까지 해서 계획에 없던 앨범이 탄생하게 된 거에요.

리: 그럼 ‘마인드 컴바인드’는 또 한 번 결과물을 기대해도 좋을 진행형 프로젝트인가요?
진보: 사실 같이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어야 했는데, 그러지는 못했어요. 물론, 음악적인 교류는 계속 이어가고 있고 인터뷰가 끝난 후에도 저는 피제이 형을 만나서 함께 작업을 해야 해요. 일단 이 프로젝트는 진행될 거고요. 개인적으로는 프로듀서 쪽에 비중을 더 두고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제가 다른 뮤지션의 음악에 직접 프로듀싱으로 참여할 기회는 많이 없었어요. 이번에 제가 미국에서 인디펜던트 아티스트 관련한 공부를 했잖아요. 그 클래스를 마치고 제가 비로소 프로듀서로 자리 잡힌 거에요. ‘네가 프로듀서니까 곡은 네가 만들어야 해. 여기 피아노는 이렇게 쳐줘’ 이렇게 되다 보니 저도 프로듀싱 부분에 더 매진하고 싶어졌고요. 저에게 의뢰된 몇 개의 프로젝트를 마치면, 마인드 컴바인드도 계속해서 진행하지 않을까 싶어요.

리: [Mind Combined] 앨범은 프로젝트 앨범인데다가 솔로 앨범이 나온 지 얼마 안 돼서 발표하는 거였기 때문에 뚜렷한 컨셉트와 스타일을 염두에 뒀을 것도 같은데, 이 앨범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뭐였나요?
진보: [AfterWork] 발매 이후로 리스너들의 반응을 보니까 보컬이 많이 없어서 아쉽다는 이야기가 많았어요. 사실 [AfterWork]는 이렇게 밖에 나올 수 없는 앨범이었고, 이렇게 나와야만 했어요. 저도 물론 보컬을 하고 싶었던 마음은 있었지만, [AfterWork]에서는 분위기를 위해서 있는 보컬도 빼야 하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Mind Combined] 작업은 보컬에 대한 부분을 염두에 두고, 보컬라인을 많이 살려서 작업을 했어요. [AfterWork]에서는 추상적이게 1절같이 살짝 나왔다가 안 나왔다가 들어가고 하는 부분이 있었다면, 이 앨범에서는 앱스트랙 힙합 같은 느낌보다는 소울이나 네오 소울 같은 느낌을 주려고 했고요. 사운드 적으로는 제이 딜라(J Dilla), 매드립(Madlib), 플라잉 로터스(Flying Lotus)같이 컴프레스가 많이 된 사운드, 즉, 오버 컴프레스 사운드를 구현하고 싶었어요. 둘 다 그런 사운드를 좋아하기도 했고요.

리: 피제이 씨는 라임버스의 이미지 때문인지, 그런 사운드를 좋아하거나 구현할거라는 상상을 못했는데, 이 앨범을 통해 사람들을 새삼 놀라게 했던 것 같아요.
진보: 보통 특이한 사운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만의 셋업이 있거든요? 예를 들어 특정한 악기를 쓰고 테크닉을 쓴다든지, 하다못해 어떤 스피커로 듣기 때문에 귀가 발달했다든지 하는…. 근데 피제이 형이 신기했던 건 MPC에 있는 것도 그런 사운드가 나오고 모티프라는 건반의 자체 시퀀서로 작곡한 곡에서 그런 사운드가 나온다는 거였어요. 컴퓨터로도 두 가지 다른 시퀀싱 프로그램을 쓰는데 같은 사운드를 내는 걸 보고 정말 많이 배웠어요. 하나의 셋업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그 사운드를 캐치해내고 창조해내는 것은 여러 가지 길이 있을 수 있구나, 정작 중요한 건 자기가 잘 캐치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죠.

리: 진보 씨도 프로듀싱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음악적인 피드백이나 교감이 많았겠네요.
진보: 굉장히 작업하기가 쉬웠죠. 서로가 완전히 모르는 사람이 같이 작업하는 게 아니었으니까요. 예를 들어 낮밤이 다른 사람들끼리 연애하면 서로 맞지가 않아서 연애하기가 힘들잖아요. 근데 둘 다 밤새는 뮤지션끼리 만나면 할 말도 많고 소통이 정말 편한 거에요. 음악적인 취향도 중요해요. 작업할 때 한 멜로디 다음에 가고 싶은 멜로디의 메뉴가 서로 너무 다르면 예민해지거든요. 공동작업을 할 때는 그런 부분들이 더욱 예민하게 작용해서 자존심도 상하고 미묘한 갈등이 생길 수도 있는데, 형하고 전 서로 비슷한 감성을 바탕으로 고르니까 크게 다르지가 않았어요. 서로 좋아하는 부분이 크게 벗어나질 않으니까 짝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었죠.

리: 결과적으로 이 앨범을 통해 두 분이 한 단계 레벨업을 한 것 같아 보이네요.
진보: 그런 셈이죠. 서로에게 좋은 자극이 되었으니까요.

리: 다시 [AfterWork] 이야기를 해보죠. 앨범에 수록된 곡들은 2~3년 전에 완성되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첫 번째 트랙 “U R” 같은 경우는 곡 마지막에 ‘2008 Mixtape’이라는 멘트도 있고, 마지막트랙 “bye 27”는 진보 씨의 27살을 보는 느낌이죠. 원래는 정규작이 아닌 믹스테입으로 낼 계획이었나요?
진보: 제가 진보적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다가도 스스로에게 보수적이라고 느끼는 점이 있어요. “U R” 같은 곡은 훅도 없이 쭉 계속 진행되는 구조잖아요. “Move On / Are U There?” 같은 곡도 두 곡이 한데 합쳐져 있고, 그것마저 특정 부분에만 보컬이 나오는 추상적인 구성이어서 처음에 이걸 앨범으로 낼 방법은 믹스테입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리: 그래도 믹스테입으로 내기엔 좀 아까웠을 것 같아요.
진보: 네. 그렇지만 믹스테입에도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말 그대로 기존 인스트루멘탈에 동네에서 랩 잘하는 친구가 랩을 얹어서 내는 종류도 있고, 요새는 유명한 뮤지션들이 정규작과 다름없는 믹스테입을 내놓기도 하구요. 근데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정형적인 틀에서 벗어나서 맘대로 해볼 수 있는 믹스테입이에요. 제 블로그에도 소개했던 뮤지션 가운데, 제가 영향받았고 좋아하는 프랭크 자파(Frank Zappa)라는 뮤지션의 앨범을 들어보면 어떤 트랙은 4초짜리도 있어요. ‘띠리디리디딩~’하고 끝. (웃음) 어떤 트랙은 12분이 넘는 데 구성이 엄청 복잡해서 이걸 어떻게 작곡을 했나 싶은 곡도 있고요.

리: 그런 틀을 깨는 재미가 또 있잖아요.
진보: 억지로 3분짜리 노래를 만들려고 꾸역꾸역 만드는 게 아니라, 진짜 10분짜리 노래를 만들 자신이 있지만, 일부러 장난치고 싶은 생각도 있고요. 영화를 예로 들면 일부러 보기에 불편한 영화를 만들기도 하잖아요. 무조건 다 보기 좋은 영화만 있는 건 아니듯이. 음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요. 그런 느낌을 많이 표현하고 싶어서 믹스테입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거죠. 또 그렇게 해야지만 주제에 따른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요.

리: 그런 식의 정규 앨범을 내도 괜찮지 않았을까요?
진보: 정규 앨범은 하나의 스토리로 짜인 앨범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근데 그러기 위해서 곡을 하나하나 배치하고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엄두도 못 내고 그냥 이것저것을 다 모아서 믹스테입을 내야겠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그러다가 “U R”이라는 노래를 중심으로 ‘Afterwork’라는 주제로 중심이 잡힌 거죠. 잃어버린 것들, 상실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로요.

리: [AfterWork]이라는 타이틀이 정규앨범으로 나오게 된 데에는 전적으로 본인의 경험과 의사가 반영된 거네요?
진보: 여러 영향을 받았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냥 제 앨범을 낼 거라는 확실한 계획이 있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전에 있던 소속사와도 계약이 끝난 상태였고 음반계약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작업 할 때마다 제가 내는 노래들이 ‘너무 뻣뻣하다.’, ‘예술하려고 계약했냐?’라는 얘기를 너무 많이 듣다 보니까 하기가 싫었고, 오로지 제 앨범을 내고 맘대로 하고 싶었는데 마침 그런 여건이 준비되어있었던 거죠. 그 상황에서 무조건 앨범을 하자는 목표는 있었어요.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주제에 관한 건 제 체험이 바탕이 되었어요. 사랑도 그렇고 회사도 그렇고… 모든 게 이루어졌다가 한 사이클이 끝난 상태였기 때문에 그런걸 표현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죠. 문제는 사랑의 아픔, 사회적인 아픔 등을 어떻게 섞어야 할지 전혀 아이디어가 없었었어요. 그런데 “U R” 이란 노래가 중심을 잡게 해줬어요. “U R”이 거의 고통의 늪 마지막에서 허덕이고 있는 저에게 스스로 구원의 메시지를 보내는 노래가 되어준 셈이에요.

리: 말씀을 듣고 보니 앨범의 전체적인 스토리는 진보 씨의 27살 이야기로 귀결되는 셈이네요.
진보: 제가 어렸을 때부터 27살이 제일 기대되는 나이였거든요. 그리고 공교롭게도 제가 27살 때 스스로 일어서고 움직여서 게으름을 극복해내고 결국엔 결과물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게 우연 같지 않았어요. 모든 것을 27살에 하게 된 것. 아픔을 겪고 여러 경험을 바탕으로 인격적으로 성숙해지고 정리가 돼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정도의 에너지가 충전된 그런 시기가 27살이었죠. [AfterWork]가 나왔을 때 바로 그런 기분이 들었고요. 애를 낳는 부모님의 심정 있잖아요. '너였구나!'라는 느낌이요. (웃음) 부모가 처음에 애를 안으면 '너였니? 안녕? 반가워'라고 하잖아요. 자기가 낳은 애지만, 처음 만난 거죠. 그렇게 생긴지 몰랐었고 늘 상상만 했던 것처럼. 저도 이 앨범이 커버까지 딱 나왔을 떄 '아 이거구나… 이런 게 내 머릿속에서 나오려고 지난 몇 년 동안 꿈틀대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리: 일진스(Ill Jeanz) EP 이야기를 해볼까요? 어떻게 보면 종합선물 세트같아요. 분명 일진스만의 색은 뚜렷하지만, 장르적으로는 여러 가지를 담아낸 느낌이었거든요.
진보: 일진스 앨범은 원래 멤버 중에 이브장(Evejang)이랑 씬(Sin)이라는 친구 둘이서 원래부터 듀오였고 앨범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저와 흑락회 선후배 사이라 저랑 지호(JIHO)라는 친구가 프로듀싱을 도와주기로 했던 거예요. 그러다 5명이 팀으로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리: 아, 그럼 원래는 프로듀서로만 참여를?
진보: 네. 원래 저희는 프로듀서로만 참여해서 그 앨범을 내는 게 목표였어요. 근데, 갑자기 다같이 하면 어떻겠냐는 얘기가 나온 거죠. 근데, [Mind Combined]까지 작업한 상태라 힘도 들고 미국도 가야하고, ‘내가 이것까지 다 할 수 있을까?’, ‘책임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확신이 서지 않았어요. 그런데 저희는 고등학교 때부터 선후배 사이이다 보니 보통 인간관계와는 다른 느낌이 있어요. 25살 때 만난 사람들과는 다른 느낌이 있는 거죠. 한창 사춘기 17~18살 때 만난 사람들이잖아요. 빤스만 입고 비오는 날 축구하던 사이이고…. (전원웃음) 피제이 형과 작업에서 느껴지는 음악적인 편안함도 있지만, 일진스랑 함께 있을 때는 서로 거리낄 것 없는 선후배끼리의 편안함이 있어요. 그런 것을 느끼고 함께 앨범에 담아내고 싶어졌죠. 언제 기회가 될까 싶기도 했고…. 그러다가 이왕 ‘Mind Combined’ 후려친 김에 일진스까지 후려치자. 아예 마지막까지 토하고 가야겠다 라고 맘 먹었죠. 아까 질문에서 매우 정확하게 짚어주셨는데, 분명 음악적 장르로는 여러 가지가 묶여있는데도 다섯 명의 공통적인 색깔이 있다는 건 저도 뭔지 알 것 같아요. 일진스 앨범은 정말 예정에 없던 건데도 그렇게 일진스가 탄생하고 그 결과물들은 제가 미국으로 건너간 뒤에 출시가 된 거에요. 제가 떠나기 직전까지 녹음을 하고 믹싱, 마스터링을 미국에 있는 동안 해서 6월에 발매를 했던 거였죠.

리: 지호 씨는 일렉트로니카 팀인 써드코스트의 멤버로 알고 있는데, 흑락회 출신이었군요.
진보: 그 친구가 씬에 굉장히 빨리 뛰어들었다가 빨리 나온 것 같아요. 1999년도에 블루몽키스에서 열리는 프리스타일 배틀에도 나오던 진짜 랩퍼였어요. 흑락회 2기인데 뉴욕 퀸즈(Queens)에서 와서 나스(Nas)를 굉장히 좋아해요. 흑락회를 처음 만든 1기의 경우엔 인원이 친구들 위주였는데, 2기를 뽑을 때 한 학년 아래에 뉴욕 퀸즈에서 온 애가 있다고 소문이 난 거에요. 한 친구가 보러 갔다 오더니 장난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두 번째로 뛰어가서 “네가 지호냐?”라고 물어보고 랩을 한번 해보라고 시켰어요. 그랬는데 완전 놀라운 거에요. 그 친구 하는 걸 보면 진정한 MC였는데, 음악적으로는 DJ랑 MC 중에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왜냐면, 그 친구는 음악적 재능이 DJ쪽에서도 뛰어났거든요. 제가 아는 사람 가운데 음악을 제일 많이 듣는 사람이고 듣는 것도 언제나 제일 좋은 것, 찾기 어려운 것, 최신음악이거나 희귀한 것, 제일 앞서나가는 것을 잘 찾아 듣는 사람이에요. 저에겐 언제나 음악적 창고 같은 존재고요. 그러다 보니까 2000년대로 들어선 이후로 일렉트로닉 음악을 비롯해 굉장히 깊게 들어가기 시작하더라고요. 이 친구가 완전 퀸즈 흑인 스타일이었고 저는 이 친구에게 영향을 받아서 같이 경쟁하던 관계였는데, 나중에 이 친구는 좀 더 유럽 쪽으로 취향을 뻗어 나가고, 지금은 제가 흑인음악을 하는 걸 보면 약간 바뀐 셈이죠. 그런데 이 앨범을 통해서 다시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기뻤어요.

리: 그럼 지호 씨는 써드코스트 활동을 계속 하고 있나요?
진보: 디지털 싱글이 나왔고요. 써드코스트도 (저와) 마찬가지로 싸이더스에서 나와서 인디펜던트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어요. 아마 인터넷 사이트를 중심으로 활동 내용이 올라와 있을 거에요.

리: 써드코스트 팬들이 일진스 앨범에 주목하면 서로 윈윈(Win-Win)이 되겠네요.
진보: (웃음) 맞아요. 써드코스트 음악만 듣고서 지호가 낭만적이고 세심한 남자일 줄 알았는데, 일진스에서 다른걸 보여주면 사람들이 어느 정도는 놀라지 않을까요?

리: 일반적인 예상으로는 진보 씨가 총괄 프로듀싱을 맡을 줄 알았는데, 이브장(Evejang) 씨가 맡았더군요?
진보: 네. 이브장이 왜 ‘EveJang’이냐면, 흑락회 3기 부장이었거든요. 요즘도 저는 이브장한테 전화받으면, ‘네, 부장님’이라며 받아요. (전원웃음) 이브장은 흑락회의 가장 상징적인 인물 중 하나에요. 저를 비롯한 1기는 흑락회를 만들었다는데 의미가 있고 2기까지 그렇다면, 3기부터 굉장히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해요. 공연 때 주변학교에 다니는 여학생들이 왔는데 그것도 정말 괜찮은 여학생들이 앞에 포진하는 거 보면서 선배로서 부럽기도 하고 ‘아, 너희는 해냈구나! 우리는 멍석을 깔았지만, 열매는 너희가 맺는구나.’라는 얘길 했었거든요. 그 모든걸 이끌고 리더십을 발휘한 게 이브장이었어요. 지금까지도 이브장이 흑락회 블로그인 흑락닷컴(http://www.hookrock.com)을 개설해서 운영하고 있고, 저랑 흑락회를 이끌어간다는 느낌이에요. 흑락회를 계속 어떻게 만들어나가야 하는지에 관해서도 최근까지 함께 고민하던 터라 그런 맥락에서 같이 기획을 하게 된 거고요. 게다가 저희의 뒤를 이어서 음악을 하는 친구고. “Lights off”, “I Want U”, “ILL JEANZ” 이 세 곡은 이 친구가 프로듀서였고 저도 부분적으로 참여했어요. 한마디로 저희 다섯명의 느낌이 모두 들어간 것 같아요. 제가 다 프로듀싱하는 방법도 생각 했었지만 그룹이라는 것의 가치는 자기 혼자선 절대 못하는 것을 할 수 있다는 거잖아요.

리: “Lights off”라는 곡은 국내최고 기타세션으로 알려진 샘리(Sam Lee) 씨의 참여도 돋보였어요. 샘리 씨가 어떻게 참여하게 된 건가요?
진보: 이브장과 씬이 듀오로 준비하던 때 써드코스트 작업실에서 작업하고 있었는데, 그 작업실을 통해서 샘리 씨랑 인연이 닿았어요. 나중에 제가 듣기로는 맨 처음 이 트랙을 받았을 때 샘리 씨가 워낙 잘하셔서 노래를 한번 들어보신 다음에 바로 쭉 연주해주시고 갔다고 들었어요. 알아서 제가 쓸 수 있게끔 연주를 정말 잘해 주셨더라고요. 제가 맘에 드는 부분을 고르는데 배치할 수 있는 경우의 수도 많고, 기타 소리도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잘 되어있으니까 개인적으로 만지기가 정말 좋았어요. 감사하게 생각해요.

리: 일진스로 다음 앨범은 언제쯤?
진보: 다음앨범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이브장이 프로듀싱을 하기 때문에 이브장이 준비하고 있고요. 지난 앨범 같은 경우도 이브장이 보낸 곡들 중에 몇 개를 고르고 저희가 새로 만든 걸 추가하는 식으로 작업했기 때문에, 다음 번에도 또 이브장이 ‘Executive Producer’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리: 흑락회 활동 때 학교에서 별다른 제재는 없었나요?
진보: 저희가 공연 준비를 할 때 갑자기 못하게 하는 선생님이 있긴 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동네 민원을 신경 써서 그런 것 같아요. 하지만, 저희는 약속돼있었던 거니까 무조건 강행한다는 입장이었고, 그 나이 때 분개하는 심정은... 아시죠? (웃음) 그때 계획했던 그 공연에 정말 많은 공을 들였는데 바로 전날에 못하게 하니까 싸우기도 했었어요. 그래서 결국엔 좀 더 비좁은 장소로 옮겨서 했죠.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더 성공적이었고 나중에는 선생님들이 그것을 자기 명성에 이용하더라고요.

리: “Check It Out Now” 같은 곡에 그런 느낌이 많이 들어간 것 같아요. 학교 선생님들에 대한 불만과 울분 같은….
진보: 그런 느낌이 많이 들어가있죠. 이율배반적인 선생님들에 대한 이야기들이요.

리: 곡의 감성은 사춘기 남자 고등학생의 반항심리로 느껴지기도 해요.
진보: 정확하시네요. 그런 느낌을 담아내려고 노력했는데, 알아주시다니 기쁘네요. (웃음)

리: 10년이 훌쩍 지났어도 일진스로 뭉칠 수 있다는 게 대단해요. 이런 게 다 음악의 힘인 것 같아요. 학창시절에 그런 추억을 가진다는 게 참 힘들잖아요. 어떻게 보면 상문고 자체가 힙합의 메카에요. 김진표 씨도 상문고 출신이잖아요.
진보: 네, 이현도 씨도 다니다가 안양예고로 전학 갔고.…

리: 지난 번에 뉴올 씨와 인터뷰할 때 고등학교 연합 공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뉴올 씨와는 음악적으로 많은 영감이나 피드백을 주고받는 편인가요?
진보: 요샌 음악적인 교류는 안하고 있어요. 뉴올은 제가 음악을 시작하는데 있어 많은 영향을 준 친구에요. 제 앨범을 디씨트라이브(DCTribe)라는 사이트에 올려준 사람이 뉴올이기도 했고요. 그리고 작곡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준 사람도 그 친구였고요. 고등학교 졸업할 때쯤 제 주변에 작곡한다는 사람이 뉴올이랑 프라이머리 밖에 없었어요. 초등학교, 중학교 때부터 알던 친구인데 작곡을 하고 있다는 얘길 들으니 묘하더라고요. 당시 밀림이라는 사이트에서 차트 몇 위에 올라가고 요즘 잘나간다더라 하는 게 묘했어요. 같이 밴드하던 애들인데.… 그래서 ‘나도 해봐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고 작곡을 시작하게 해준 고마운 친구에요.

리: 프라이머리 씨도요?
진보: 동훈이랑은 중학교 때 밴드를 같이했어요.

리: 어떻게 보면 세 분이 지금까지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았겠네요.
진보: 씬의 중요성이라는 게, 동네에 이렇게 음악을 하는 친구가 있으면 그 친구 하나만 나오는 게 아니라 몇 명씩 나오잖아요. 서로 영감도 주고 받고요. 사실 음악가든 미술가든 재능이 있는 사람이 있어도 정보가 없고 선이 닿질 않으면 못할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면 씬이라는 게 참 중요한 것 같아요.

리: 진보 씨의 장점 중 하나가 바로 앨범의 가사들이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는 점입니다. “떠나기 전날에”, “너 없는”, “U R” 등등…. 대부분 본인이 직접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작사하는 편인가요?
진보: 머릿속에서 벌어진 일이든 머리 밖에서 벌어진 일이든, 곡을 떠올리고 느끼는 감각들은 결국 직관적 경험에서 표현되는 것 같아요. 어떤 사람과 사랑에 빠지면 ‘일주일 째 그녀의 얼굴이 잘 때마다 떠올라서 죽겠어요.’라고 하게 되는 것처럼, 아무래도 제가 그 동안 가장 많이 그린 것들이 나오는 거죠. 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든 약한 사람이든 기가 센 사람이든 아니든 간에 이별 앞에서는 약해지거나 무너지잖아요. 모두가 똑같이 그 강력한 쓰나미 앞에선 무기력하다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그런 상실감이나 사랑의 아픔을 표현하는 것은 어떤 배경과는 상관없이 많은 사람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 같아요.

리: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보니 대부분 같은 20대 중후반의 공감을 많이 사는 것 같아요. 첫 앨범이었던 [Call My Name]을 작업할 때는 어땠어요?
진보: 그 앨범은 굉장히 급하게 냈는데 사실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앨범을 낼 수 없었을 것 같아요. 그 나이 때는 자신과 싸우면서 일정들을 실행해나가고 앨범을 낸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인데, 당시 입대를 해야 했기 때문에 굉장히 필사적으로 (작업에) 임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아쉬운 게 많고 제작 과정에서 부족한 면도 많은데 또 프로덕션 질적인 점으로도 아쉬운 점이 한둘이 아니에요. 하지만 그 앨범에서 제가 꼭 해야 했고 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잘 담아냈던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자선공연이 있어서 공연할 곡을 찾으며 옛날 곡들을 들어보다가 오랜만에 “Call My Name”을 들었는데, 당시에도 솔직한 음악을 했다는 것에 스스로 안도했어요. (웃음)

리: 진보 씨의 음악을 이야기할 때 힙합을 따로 떼어놓을 순 없는데, 자신의 정체성을 굳이 나눈다면 어느 쪽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를테면 ‘알앤비/소울을 뿌리로 하지만, 힙합을 적극적으로 껴안는’ 쪽인가요? ‘힙합을 뿌리로 하고, 그것을 알앤비/소울 혹은 보컬을 통해 표현하는’ 쪽인가요?
진보: 제가 본격적으로 음악에 매료되기 시작한 건 11살 때 보이즈 투 맨(Boyz II Men) 음악을 접한 후였어요.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 건 알켈리(R.Kelly) 음악을 들은 후였고요. 그리고 본격적으로 노래를 하게 된 건 뮤지끄 소울차일드(Musiq Soulchild)의 음악을 들은 후였어요. 그런 과정이나 제가 좋아하는 프로듀서들을 봤을 땐 음악적으로 알앤비에 기초를 두었다고 할 수 있어요. 거기에 힙합적인 요소를 가미한 격이고요. 근데 재미있는 건 아티스트로서 마인드는 힙합이에요. 저희 세대에 새로 떠올랐던 새로운 문화가 힙합이었잖아요. 청소년기에 힙합문화를 받아들이면서 말투나 걸음걸이, 사상, 패션스타일 같은 모든 것이 힙합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 것도 보이즈 투 맨의 음악보다는 투팍(2pac), 제이딜라(J Dilla)의 음악이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문화 측면에선 힙합문화에 속했다고 생각해요.

리: 미국 LA M.I(Musicians Institute)에서 인디펜던트 아티스트 과정을 수료했죠? (진보: 네) 어떤 계기로 미국으로 건너가서 공부를?
진보: 당시 전 소속사와 문제도 있었고, 입사를 하면서 혼란스러웠어요. 아티스트랑 회사원은 사실 거의 정반대의 마인드를 가지고 접근해야 하는 건데, 회사원으로 변신을 한다는 게 부담스럽고 어려웠어요. 그래서 당시에는 웃지도 않고 우울하고 폐쇄적이 돼서 사람도 많이 안 만나고 혼자 있었는데, 주변에 지호나 문대표 같은 친구들이 제가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길 바랐어요. 이 친구들이 미국에 인디펜던트 아티스트 과정을 가르치는 학교가 있는데, 유학을 가는 게 어떠냐고 권유했죠. 어차피 한국에선 할 만큼 한 거 아니냐며 햇빛 따뜻한 미국 LA에서 공부해보면 뭔가 나아지지 않겠냐고 했어요. 마침 저도 회사를 그만두고 뭔가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고…. 회사 다니면서 작은 돈은 모아놓았었고 한참 망설이다가 결정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사실 아주 옛날부터 언제나 계획하고 꿈꿔왔던 것 같아요. 다녀온 다음엔 정말 잘 갔다 왔고, 내가 진정으로 원했었던 것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리: LA에서 공연도 했던 걸로 알고 있어요.
진보: 공연을 각각 ‘멜로즈(Melose)’랑 ‘페어 팩스(Fair Fax)’라는 길에서 했는데 말하자면 압구정 같은 곳이에요. 스투시 같은 스트릿 패션 브랜드와 유명한 LP 가게들이 있는…. 문화 스팟이라고 할 수 있죠. 그 곳에 있는 아트갤러리에 디깅도너츠(Diggin Donuts)를 운영하고 있는 문대표와 갔어요. 이 친구가 예술작품을 좋아하는데 그냥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사서 걸어놓을 정도로 좋아하는 친구에요. 우리 또래에 그림을 사서 걸어놓는 사람은 드물잖아요. 이 친구는 맘에 드는 그림을 사다가 그 곳 화가랑 친해졌어요. 그 분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공연을 하자는 얘기까지 나오게 된 거였죠. 그 분이 나이가 마흔 정도 된 분이었는데, 생각하는 게 어떻게 보면 저희보다 젊은 생각을 가진데다가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상상력이 어린아이 같은 거에요. 저도 그 분 앞에서 진짜 편안하게 제 모습을 맘껏 보여드렸고, 서로 생각이 맞아서 공연이 성사된 거고요.

리: 현지 반응은 어땠어요?
진보: 관객이 20명 남짓한 소규모 공연이었는데, 관객석에 의자를 놓으니 장소가 아트갤러리라 왠지 작은 미술 교실같은 느낌이었어요. 비록, 엄청난 환호성과 뜨거운 열기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느낌의 소소한 학예발표회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저는 환호성은 넘치지만, 관객과 공감대가 없는 공연보다는 몇 명이 뻘쭘하게 앉아있어도 음악적으로 묘하게 공감대도 형성하고 현장감 있는 공연이 좋아요. 그게 공연하는 사람에겐 새로운 영감을 주면서, 다른 세계를 창조할 수 있게 해주거든요.

리: 국내나 국외나 인디 뮤지션으로서 활동하는 데 한계는 분명히 있어요. 국내는 사정이 훨씬 열악하다는 게 차이겠죠. 물론, 크라잉 넛이나 노브레인 같이 입지를 성공적으로 다진 뮤지션들도 있지만요. 관련 분야를 전공한 후 진보 씨 나름대로 내린 인디 뮤지션에 대한 정의가 있을 것 같은데….
진보: 대형 기획사가 아니고 자기 음반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고 있는 이가 인디펜던트 아티스트라고 생각해요. 대중이 어떤 식으로 나를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모든 준비를 자기가 맡아서 할 욕심이 있는 사람들. 수익적인 측면에서도, 비록, 우리나라가 아직 열악하긴 하지만, 옛날과는 달리 기획사를 통해서만 음악을 유통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 쇼핑몰을 내는 것처럼 개인사업자로 벤처창업이 가능해졌잖아요. 다만, 미국에선 홈페이지를 만들고 음악을 그곳에서 직접 결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매우 쉽게 짜여있고, 그런 위젯도 많은데, 국내는 그렇지 않다는 게 안타깝죠.

리: 아무래도 미국은 인디 뮤지션이 자생할 수 있는 접점이 많죠. 꼭 메이저 레이블이 아니더라도 머천다이징 사업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고….
진보: 맞아요. 대표적으로 티셔츠 사업이 있죠. 미국에는 이런 제작을 다 해주는 대행사가 있어요. 음악과 관련된 사업을 진행하는 데 도움을 주는 중간대행업체가 발달해있기 때문에 인디 아티스트가 되기 쉬워요. 수입원을 여러 개로 만들 수 있고, 음반도 팔 수 있으니까요. 근데 우리나라는 대형 음원 사이트에서만 서비스되고, 현실상 뮤지션들은 그곳에서만 팔아야 하고, 수익의 70퍼센트 이상을 위에서 먹어버리니까 문제인 거죠. 음악을 유통해서 아티스트의 수익으로 바로 연결 지을 수 있는 환경이 너무 열악해요.

리: 근데 일단 우리나라에서는 인디와 언더 구분조차 모호한 경우가 있어요. 분명히 그 둘은 다르잖아요? 이에 대해 착각하고 있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죠. 그런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뮤지션의 노력도 필요하고, 장르를 떠나서 서로 손 잡을 수 있는 구도도 되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어요.
진보: 보통 한 가수가 부를 수 있는 관객 수에 따라서 받을 수 있는 기업의 스폰서라든지 공연의 규모도 커지는 거잖아요. 근데 요즘은 가요시장에서도 몇 만 명씩 동원할 수 있는 걸 그룹이나 몇몇 슈퍼스타들을 빼면, 메이저에서 활동하는 가수들도 관객을 그렇게 많이 못 부르는 것 같아요. 앨범 판매량도 그렇고요. 인디에서도 이름있는 뮤지션들이 세 팀 정도만 연합해도 더 큰 규모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예를 들어 크라잉넛이랑 노리플라이, 루시드폴이 연합 공연을 하면 큰 경기장에서 콘서트를 할 수 있을 거고, 오히려 일부 걸 그룹보다도 관객 동원력이 좋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인디는 시장성이 떨어진다고만 볼 게 아니라 아이디어를 합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할 것 같아요.

리: 그렇죠. 그런 돌파구를 찾는 게 중요해요. 그런데 아무래도 힙합, 알앤비 씬은 그 수요가 너무 어려지다 보니 롱런이 힘든 분위기에요. 그래서 음악도 점점 인디만의 색을 잃어 가는 것 같고요.
진보: 주류 문화와 비주류 문화 사이에서 사람들이 비주류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가장 큰 강점은 주류에서 할 수 없는걸 하는 거에요.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대중적인 음악을 만들수록 인디 뮤지션으로서 매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거든요. 대형공장에서 만들어낸 기성품과 수입상가에서 산 수제로 된 아라비아풍 장식품의 차이 같아요. 인디가 잘되려면 공산품이 줄 수 없는 매력을 확실히 보여줘야 할 것 같아요. 결국엔 아티스트가 자기만의 개성과 색을 살려야 한다는 거죠. 대형회사에서 음반을 만들면 결국 여러 사람의 의견이 개입된 종합적인 결과물이 나오니까 아티스트의 지분이 낮을 수밖에 없는 거고, 인디 아티스트는 자신의 지분이 높은 결과물을 만드니까 자기만의 색깔을 충분히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인 얘길 많이 담는다든지 가사에서 마니아적이고 깊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게 권리이자 의무라고 할 수 있죠. 주류 음악이라는 건 여러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제일 쉬운 주제를 골라서 보여주는 거니까, 그것만 익숙하게 따라가다가는 마치 책 한 권을 다 못 읽고 요약본만 읽는 것이 습관돼서 책 읽기가 어려워지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상업적인 면에서 본인의 손해를 조금 감수할 각오가 되어있는 뮤지션이라면, 음악적인 깊이에서도 조금은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요.

리: 인디라는 이름을 걸어놓고 주류 가요계에서도 쉽게 들을 수 있는 전형적인 스타일의음악을 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런 건 인디 음악을 찾는 사람들의 뒤통수를 치는듯한 느낌이 들어요.
진보: 중요한 점을 잘 지적해주셨네요. 영국시장과 미국시장의 차이를 영국교수님께 물어봤더니 미국은 빌보드라는 커다란 시장이 컨트롤하고 있어서 그런 음악이 많이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영국은 군소 규모의 시장이 여러 개가 있어서 잘하는 뮤지션이 많이 나오고 결국엔 전국구가 된다고 하더군요. 인디가 주류 음악이 될 수 있는 것도 좋은 사례인 것 같아요. 말하자면 내 개성대로 했는데 그게 굉장히 보편적인 여러 사람의 감성을 건드리고 공감대를 살 수 있다면 서로에게 굉장히 좋은 상황이 되는 거죠. 물론, 인디인 척하면서 인디로서 얻을 수 있는 이미지와 주류로서 얻을 수 있는 이미지를 다 얌체같이 먹으려고 하면 문제가 있는 거지만, 순수한 의도에서 둘 다 얻을 수 있다면 좋다고 생각해요.

리: 예전과는 다르게 굳이 CD를 사지 않아도 앨범을 쉽게 구해서 들을 수 있게 되었고, 그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예전보다 접근성은 높아진 반면에 그것을 접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가벼워졌다는 비판이 있어요. 진보 씨 생각은 어때요?
진보: 300페이지짜리 책을 읽을 수 있는 독서량과 150페이지짜리 책만 읽을 수 있는 독서량이 있는 것처럼 음악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이른바 훅(Hook) 부분만 중독적이고 단순한 음악을 점점 듣게 되고…. 예를 들어 70년대 음악을 듣다 보면 음악의 구조가 지금보다 복잡하고 그래서 듣기 어려운 측면이 있지만, 그만큼 어려운 구조를 유지하면서 대중에게는 듣기 좋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뮤지션에게 주어진 과제가 컸고 결과물도 고급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요즘 음악은 사람들이 듣는 구간도 짧아지고 구조도 단순화되다 보니 만들 때 노력이 덜해진 것 같아요. 예를 들자면 학생이 노는 사이클로 가게 되면 공부하는 사이클로 돌아가기 어려운 것처럼, 음악도 대충 듣는 쪽으로 가다 보면 진지하게 듣는 게 어려워지는 거죠. 운동도 매일 하다가 하루 이틀 안 하면 어려워지는 것처럼요. 패스트푸드만 잘 되고 사람들이 된장찌개의 맛을 몰라주게 되면 전통적인 고유의 맛은 점점 잊혀져 갈 수밖에 없잖아요. 저는 전통적인 음악관으로 화음과 곡 구성을 어떻게 하는지, 가사를 어떻게 중의적으로 센스있게 표현하는지를 주로 보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요즘 음악을 한동안 아예 안들었어요. 근데 그것도 어떤 감상이냐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전 분석적으로 깊고 길게 듣다 보니까 그렇게 들을 땐 감동이 없죠. 하지만, 공연장에 단순하고 빵빵 때리는 음악을 기대하고 온 사람들에겐 그런 게 필요하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모든 게 다 고급 프랑스요리일 필요는 없고, 패스트푸드나 냉동식품도 필요한 거니까요. 다만, 패스트푸드들이 음식의 전부인 것처럼 비춰지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게 전부면 취향이라는 게 다양성을 잃어버리고 한 쪽으로 몰려가게 되고, 장르도 단순해지게 되면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잖아요.

리: 진보 씨 블로그에서 미국 시장에 비교적 진지하고 깊은 음악을 하려는 사람보다 돈이 되는 대중성 위주의 음악을 하려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글을 읽었는데, 일맥상통하는 말씀이네요.
진보: 네. 수업시간에 ‘로직’이라는 프로그램을 배웠는데, 여러 악기 소리들이 들어있는 어떤 패치가 있었어요. 어셔(Usher)의 “Love In This Club”이라는 곡 있잖아요? 그 곡이 알고 보니 그 패치의 샘플을 그대로 가져온 거더라고요. 저는 그걸로 음악을 만들어서 빌보드차트 1위를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실망스러웠어요. 제가 어릴 때 선망하던 미국음악도 그렇게 변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어떻게 악기에 있는걸 그대로 쓰나… 물론,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다는 건 인정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음악도 야구나 축구처럼 경쟁의 장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말하자면 형편없고 기량이 안 되는 팀이 1등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거죠. 학교에서도 제가 하는 그런 음악의 존재를 아는 친구가 많지 않았어요. 그 쪽에서도 이른바 딥한 느낌의 음악을 하는 사람은 되게 특이하고 혼자만의 사명감에 꽂혀있거나,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지 않으면 곧 죽어도 못하는 체질이던가 아니면 그럴만한 경제적, 정신적 여유가 있는 사람밖에 없었죠. 그런 것에 민감하고 딥한 음악을 하는 친구들은 아예 재즈로 가던지 유럽 인디 음악으로 갔거든요. 흑인음악에서 네오 소울을 이어받은 딥하고 빈티지한 사운드를 하는 팀은 많지 않았어요. 특히, 남자 보컬이 없더라고요.

리: 확실히 디트로이트 쪽 음악에 영향받았다는 사실이 강하게 다가오네요. (웃음)
진보: 제이 딜라(J Dilla) 계열의 음악이 우주적인 상상력의 세계를 열어주는 것 같아요. 처음 그 듣는 맛을 이해 못할 땐 잘 몰았는데, 한번 트이면, 마치 우주에 떠다니는 듯한 느낌을 받아요. 그게 맘에 들어요.

리: 사람들이 놓치기 쉬운 부분 중 하나가 그런 음악이 뮤지션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나온 거라는 사실인데, 그런 것 보면 참 대단해요. 소스를 디깅해서 완벽하게 자기 것으로 만든다는 거….
진보: 디깅의 중요성이 그런 것 같아요. 디깅을 하고 알게 되면 더 많은 걸 보게 되잖아요. 많이 보이면 더 재미있어지고 그러다 애착이 생기고요. 프로야구 팬들을 보면 경기를 보는 것도 재미있어하지만, 누가 타율이 몇 위인지, 심지어 지난 두 달 간의 타율 추이를 본다거나, 누가 8월에 강한지, 지난 7년간을 놓고 봤을 때 가을에 강한 선수가 누구인지, 뭐 이런 정보들을 머릿속에 넣으면서 경기를 더욱 재미있게 감상하잖아요. 그들에겐 단순히 게임이 아니라 자기 인생이랑도 유기적인 관계가 있는 드라마가 되어버리는 거죠. 사실 음악도 그렇게 즐기라고 있는 거고요. 음악에도 그렇게 즐길 거리들이 많다는 걸 사람들이 좀 더 많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리: 디깅(Diggin’) 얘기가 나와서 말씀인데, 평소에 주로 어떤 것들을 디깅해요?
진보: 지금은 많이 무뎌졌는데 옛날엔 스포츠 광이어서 모든 종류의 스포츠 동향을 꿸 정도로 디깅을 정말 많이 했었어요. 그리고 유튜브로 인터뷰 보는 것에 시간할애를 많이 하는데, 주로 물리학, 우주의 미스테리 관련된걸 좋아해요. 그리고 영성(靈性)에 관련된 것, 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든지 요즘은 파울로 코엘류 같은 작가, 아니면 칼릴 지브란 같은 영성을 다룬 작가의 책에도 관심이 많아요. 전 웹서핑하면서 삼천포로 잘빠져요. 그래서 제 디깅은 주제 하나를 찾아서 하는 게 아니라 굉장히 랜덤하게 뻗어나가요. 어제는 하루종일 우주과학 인터뷰를 봤다가 오늘은 하루종일 옛날 야구선수 전설의 영상, 다큐멘터리들을 보다가 또 하루는 역대 유명했던 대통령들 연설을 보는 경우도도 있고.... 여러가지를 한 번 보면 못 헤어나오고 몇 시간씩 빠져서 보는 스타일이에요.

리: 그런 구도자나 영성, 우주 같은 것에 대한 관심이 음악에도 영향을 줬겠네요.
진보 : 우주적이고... 뭔가 신비롭고!

리: 그동안 음악적으로 여러 뮤지션과 교류해왔는데, 아직 교류나 작업이 성사되지 못한 국내 뮤지션 가운데 관심 있는 뮤지션이 있나요?
진보: 요즘 들어서 그런 공동 작업이나 교류를 많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누구 한명을 콕 찍을 순 없어요. 미국에서 여러 사람과 공동으로 작업하는 경험을 쌓으면서 굉장히 재미있다는 걸 느꼈거든요. 음악의 재미를 되찾았다고 해야 하나요? 그게 이번 미국 유학에서 얻은 가장 큰 성과 중 하나에요. 그러고 나니까 특히, 프로듀서로서는 어떤 사람과 작업을 같이했을 때 어떤 음악이 나올지 너무 궁금한 거에요. 개인적으로는 일렉트로니카 뮤지션들 중에 하우스룰즈의 서로 씨랑 같이 공연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알기로는 고등학교 선배라고 하던데.

리: 상문고가 음악의 메카네요. (웃음)
진보: 같이 하게 되면 로컬 씬에 재미난 이벤트가 될 것 같아요. 그리고 디제이 소울스케이프(DJ Soulscape) 형하고도 같이 하고 싶고…. 지금 이야기도 하고 있어요. [Sound Of Seoul] 같은 걸 함께 만들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제가 그런 트랙에다가 보컬 및 나머지를 더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고요. 작업실에 드럼도 있어서 이미 작업할 준비는 다 되어있어요. 그래서인지 소울스케이프 형이랑 할 수 있는 게 많을 것 같고 기대하는 부분도 많아요. 그리고 메인스트림 가수 중에선 보아랑 작업하고 싶어요. 저는 한국 가수 중에 누굴 좋아하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사실 그런 생각을 너무 안하고 살다 보니까 고를 수가 없어서 내가 너무 무심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긴 했어요. 부끄럽고 너무 모르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고요. 근데 한국 가수 중에 누굴 좋아하는지 생각 해봤는데 보아를 좋아하는 거 같더라고요.

리: 의외네요. (전원웃음)
진보: 최근에 나왔던 노래 중에 지누(롤러코스터 출신, 히치하이커) 씨가 작곡한 노래가 하나 있었어요. (편집자 주: BoA - Game) 아티스트나 가수는 끼가 중요한데, 보아는 어릴 때부터 완전히 가수로 살아온 거잖아요. 그래서 프로의식이 확실한 거 같아요. 직접 컨트롤을 하고 준비하는 과정을 보면 베테랑답게 잘 하는 모습이 보여서 정말 좋았어요. 듣는 분들이 오해하실 수도 있는데, 저라고 꼭 대중적인 음악을 하기 싫어하는 건 아니에요. 제가 끌리는 음악이 있고 끌리지 않는 음악이 있는 것뿐이죠.

리: 그 표현 인상적이네요. (웃음)
진보: 끌리는 게 먼저고 그 다음에 대중적이냐 아니냐가 있는 건데, 전 트렌드화와 대중적인걸 싫어하는 건 아니거든요. 저도 당연히 보편적 인간 중 한 명이기 때문에 기회가 되면 대중적인 걸 한번 제대로 만들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대신 잘 만들어야겠죠. 태양도 그런 맥락에서 같이 작업해보고 싶어요. 그쪽 계통 뮤지션 중에 자기가 하고 있는 음악을 이해 못하고 할 수 없이 하는 친구들도 많아요. 방송에 나와서 자기는 알앤비 가수라고 해도 막상 알앤비 가수라고 불리는 게 부담스러운 가수가 많을 거예요. 컨셉트 때문에 그렇게 됐는데 실은 그렇게 못하는 가수들이 분명 있거든요. 그런데 태양은 인터뷰를 읽어보면 자기가 하고 싶은 게 있는 것 같아요. 그걸 받쳐주는 사람을 원하는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제게 찬스가 오면 같이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전 잘 맞춰줄 수 있는데…. (전원웃음)

리: 태양 씨나 보아 씨하고 진보 씨의 음악이 만나는 모습 기대되네요.
진보: 그리고 루시드폴과도 작업해보고 싶어요. 저는 기본적으로 흑인음악 뮤지션이기 이전에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장르 뮤지션과 작업도 해보고 싶어요. 우선은 제 음악을 탄탄하게 해놓고요.

리: 앨범 [After Work]의 타이틀이 회사원 시절 퇴근 후에 주로 작업했기 때문에 붙여진 걸로 알고 있는데, 현실적으로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게 정말 힘들잖아요? 다시 음악에 올인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나요?
진보: 회사원 생활을 하면서 제 천진난만한 상상력과 정신적인 세계가 작아진다고 느꼈어요. 모두가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요. 어쨌든 전 그랬어요. 계속 그 공간이 줄어들고 저의 다른 캐릭터가 점점 더 생겨나고…. 예를 들면 사람들을 업무적으로 만나는 캐릭터를 했다가 다시 자유분방하게 돌아오기가 쉽지가 않았어요. 그런 과정들을 겪으면서 정신적인 생존을 선택할 것이냐, 사회적, 물리적 생존을 선택할 것이냐를 봤을 때 정신적인 것에 대한 갈증이 훨씬 컸던 것 같아요.

리: 이제 30대 뮤지션의 길로 접어들었는데, 음악적으로든 음악외적으로든 스스로에게 기대하는 부분이 있나요?
진보: 특히 정신적인 작업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 능력이 점점 쌓이기 때문에 기대돼요. 예를 들어 학자들이 40대보다 60대에 기량이 줄어들거나 하진 않잖아요. 저 역시 정신적인 작업은 노화가 없다 보니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더 쌓이는 것을 느껴요. 말하자면 팔 굽혀 펴기 백 개 하던 것을 안 하기 시작하면 점점 줄어들 수 있지만, 매일 백 개씩 하다 보면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올라가잖아요. 성이 안차니까요. 그런 것처럼 저도 뭔가 축적이 되는 것 같아서 갈수록 기대가 되요. 점점 없어지는 게 아니니까요. 기획사에서 확 키워서 1년 만에 사라지는 뮤지션 말고, 음악시장에서 굳건하게 성공했다는 베테랑 뮤지션들을 보면 대개 필드에서 한 10년 정도 했을 때부터 빛을 보더라고요. 왜 연극배우들을 봐도 그런 거 있잖아요. 10년 정도 해야 그 뒤에 빛 보는 경우들이요. 연기파배우들은 사실 30대 중반부터 연기력으로 알려지는 경우가 많으니까, 음악도 마찬가지로 계속하면 쌓여 간다는 게 정말 무서운 거라고 생각해요. 저도 10년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고, 앞으로 2~3년 지나면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한 지가 10년째 되는 거니까, 그 때가 됐을 때 어떤 기회가 다가올지, 그리고 제가 이룰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지 설레요. 내가 2년 전에서 2년 후에 이렇게 스텝이 올라갔으니까, 앞으로 2년 후를 생각하면 설레기도 하고 즐거워져요. 지금 받는 관심과 평가들이 2년 뒤엔 더 많아져서, 일본에 가서도 음악하고 전세계에 일을 벌려놓고 비행기를 타고 다닐 저를 생각하거든요.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즐거워져요.

리: 정신적으로 여유 있는 모습 보기 좋네요. 좋은 음악이 나올 수 있는 기반이 될 것 같아서 더욱 기대됩니다. 앞으로 계획된 작업은 어떤 게 있어요?
진보: 전 가능한 작업을 많이 하고 싶은데, 아무래도 자금이라든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한 제약이 많아요. 제가 이런 걸 내고 싶다고 해도 어떤 식으로 내느냐의 제약을 많이 받기 때문에 그런 점까지 계획이 구체적으로 세워진 것은 없지만, 아까 말씀드린 소울스케이프 형이랑도 작업을 추진하고 있고요. 희자매도 이번에 나올 리마스터 앨범에 리믹스 버전들로 구성한 CD 한 장이 보너스로 들어가는데, 거기에도 참여했어요. 지금 360에 있는 프로듀서를 주축으로 희자매 리믹스 계획이 되어있어요.

리: 와, 정말 기대되는 프로젝트네요.
진보: 그리고 영국에서 활동하는 줄리언 다비뉴라는 아티스트가 있는데, 그 친구의 곡에 프로듀싱으로 참여하고 있고 피처링도 했어요. 마이스페이스를 통해서 1~2년 전부터 교류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곡을 주고 받고 얘기가 나와서 한 곡은 이미 데이터까지 넘긴 상태죠. 그 곡의 hook을 제가 불렀는데, 영국에서 발매되는 앨범에 제 노래가 아무 이상 없이 수록되길 바라고 있어요. 그리고 곧 나올 샛별 씨의 새 싱글 첫 번째 곡을 같이 작업하고 있어요. 많은 사람에게 들려준 결과 굉장히 좋다고 하더라고요. 여하튼 그런 끈적끈적한 알앤비 트랙을 작업하고 있어요. 아까 말씀드렸던 마인드 컴바인드도 앞으로 계속 할거고요. 제 옛날 결과물을 모은 걸 발매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게 된다면 아마 디지털 싱글로 나올 거에요.

리: 마지막으로 더 하고 싶은 말씀이나 못다한 말씀이 있다면 해주세요.
진보: 제가 좋아하는 과학자 중에 브라이언 그린(Brian Greene)이라는 과학자가 있거든요. 일반적으로 과학자와 대중은 어찌 보면 인디 뮤지션과 대중 이상의 괴리감이 있는 관계잖아요. 사실 과학도 대중들이 어느 정도 알아야 되는 시대인데 그걸 모르고는 정책을 만들거나 여론을 만들기 어려운 시대라, 과학이 중요함에도 괴리가 되어있어요. 그런데 브라이언 그린이라는 과학자는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많이 애쓰고 있어요. 과학을 다룬 TV 시리즈를 만들고…. 책도 과학책임에도 전세계적으로 100만부가 나갔거든요. 음악으로 100만장 팔았다고 생각하면 굉장한 히트잖아요. 이론물리학 책을 100만부나 팔 정도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대단한 과학자에요. 이 과학자가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어떻게 하는가를 연구했는데, 과학자의 모습을 많이 보여주기보다는 사람과 사람이 사귀듯이 대화하면서 그 사람들을 알아가는 것, 단지 학설을 얘기하고 만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소통을 하다 보면 그게 과학과 대중의 소통도 되지 않겠냐는 얘기를 하는데 무척 감동받았어요. 어떻게 보면, 그건 (음악보다) 더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 일이잖아요. 사실 그 똑똑한 사람이 바보라서 타산이 안 맞는 일을 하는 건 아니잖아요. 굉장한 사명감과 일관성있는 가치관을 가지고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걸 보면서 효과적인 접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중적인 음악을 한다는 게 대중 누구나 들어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무조건 음악을 쉽게 만든다는 개념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제 음악을 하되 그걸 소개하는 방법으로 대중과 가까워지고 소통하는 거라고 생각하게 됐죠. 전 대중이 어려운 음악을 멀리하게 되는 것도 다 그런걸 모르기 때문인 것 같거든요. 뮤지션과 대중이 서로 알아가려는 노력을 많이 해야 할 것 같아요. 이대로 멀어져 가다간 점점 서로가 영원한 평행선을 달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이라도 각도를 틀어서 음악하는 사람들은 리스너에게 자신을 보여주려는 노력을 해야겠고, 대중도 음악하는 사람들이 하는 얘길 재미있게 들어주면서 더 궁금해하고 서로 깊은 관계를 맺어야, 음악과 씬이 더 재미있어지고 발전할 것 같아요.

2011 / 2 / 김소피

A.
마지막으로 퇴근하는 사람이 되는 날은 하루 일을 마무리지은 다음 보스네 아파트에 일감들을 배달해야 한다. 새해 들어서 부쩍 자주 가게 되는데, 보스네 아파트는 맨하탄 제일 밑퉁이에 자리잡은 아파트라 엄청 고급같지만 눈치를 잘 보면 그렇게 엄청나게 럭셔리는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웬만큼 돈 잘 버는 프로페셔날들만 모여있는데, 개 공원도 있고 (손바닥만하지만) 개가 졸라리 많다. 보스네 아파트에 들렀다가 이제 내 집으로 오는 길에, 가호*의 사촌을 산책시키는 사람을 봤다. 오늘 아침인가 언젠지 모르겠는 때에는 어딘지 기억 안 나는 곳에서 보스**의 사촌을 산책시키는 사람도 봤다. ㅎ

*가호: 빅뱅 쥐드래곤의 샤페이? 종 개
**보스: 빅뱅 태양의 보스톤 테리어? 종 개

B.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건너와서 첫 해에 이 윗동네에서 살 적에 내가 다녔던 공립고등학교에 토종 미국 흑인은 정말 딱 한 명이었고 죄 백인이었다. 백인 미국인 v. 완전 쌩 외국인 이민자들로 갈렸는데, 전쟁 난민에는 크게 수단애들과 보스니아애들이 있었다. 수단은 여적도 시끄럽지만 발칸반도 쪽이 그 당시엔 대박 시끄러웠다ㅎ 막 그 동네에서 인종청소하고 보스니아 전쟁나고 이럴 때니까 말이다. 어쨌든, 거기서 알았던 애들 중 친하게 지낸 애들이 세 명이 생각나는데, 백인 미국인 한 명, (수단 출신일 것 같은, 동아프리카계처럼 생긴) 아프리카 흑인 한 명, 보스니아 애 한 명이었다. 그리고 우크라이난가? 에서 온 애랑도 좀 친했다. 내가 제일 친해지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던 애는 완전 플래티넘 블론드에 정석적으로다가 완전 얄쌍한 만화적인 분위기로 잘 생긴 미소년이었는데, 얜 성이 K로 시작해서 홈룸시간에 나랑 앞뒤로 앉았고 나랑 하루 일고 여덟 교시 중 대여섯 수업이 겹쳤던 것 같다. 그렇게 자주 보는 애는 걔가 유일했다. 테니스 팀에도 들어있었다. 그 동네는 남자 여자 테니스 시즌이 같았다. 아 그리고 내가 살던 집 바로 아래에 있는 아파트에서 살던 한국 혼혈 남자애가 나한테 좀 친하게 대해줬는데, 워낙 아시아계가 드문 동네다 보니 얘는 베트남 애들이랑 많이 놀았다.


2011 / 2 / 김소피

빨래했다. 세상을 다 얻은 이 기분!! T_T!!


2011 / 2 / 김소피

1. 한 사나흘 따뜻하길래 이월초에 이렇게 따뜻한 날씨가 수상하긴 하지만 이제 겨울도 슬슬 끝물인가 했더니 아니나다를까 오늘 퇴근하는데 갑자기 엄청 추웠다.

2. 오늘 무슨 날인가! 사무실 주변 커피 가게들 중 내가 원하는 종목을 파는데 그 값이 그나마 비교적 싼 군것질 가게가 있다. 요 며칠 집 앞 가게에서 출근길에 커피를 사갔기 때문에 거기 갈 일이 없었는데 오늘은 출근길에 커피를 못 사서 점심 때 그 가게에 갔었다. 근데 거기 일하는 언니가 그 동안 어디 있었어! 왤케 오랜만이야! 하는 거다. 그~렇게 자주 가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퇴근 길에는 집 앞에 있는, 내가 유일하게 돈 주고 사보는 잡지를 파는 몇 군데 안 되는 구멍가게에 들러서 며칠째 벼르던 그 잡지를 샀다. 근데 계산하는 아저씨가 오랜만이네! 하시는 거다. 거기도 그 잡지 살 때만 몇 번 간 게 단데.. 사람들 참 정도 많지 나의 개떡 같은 서비스에 대해서 반성을 할까 하다 말았나


2011 / 2 / 김소피
이재이 2011.02.09

1. 일기예보를 확인하는 습관을 기릅시다.

 

2. 사람들이 그 날따라 언니를 갑자기 확 오랜만에 보는 기분이 들었나봄ㅋㅋㅋㅋ

제목: 오늘의 일기
오늘 퇴근을 걸어서 했는데 확실하지는 않지만 올해 들어서는 처음이었던 것 같다? 헐 되게 오랜만이야 꾸준히 해야긔

제목: 손님들에게 하는 말
이 위의 숫자 1과 2는 월을 뜻하기도 하고 카테고리이기도 한데 손님 카테고리를 만들고 글쓰기 기능을 오픈하면 어떻습니까? 그러면 좋을 것 같돠...

2011 / 2 / 김소피
이재이 2011.02.09

글 쓰는 공간이 있으면 나도 좋을 것 같돠...

제목: 하이퍼한 오늘의 일기

1. 며칠 전에 룸메 Z언니의 요새 플링인 거 같은 F군을 만났다. 언니의 썸씽남 중 몇몇과는 인사를 나눴는데, 그 동안은 정석적으로 잘생기고 간지나는 류의 남자였다면 이번에는 약간 개성파에 멋지다기보다는 귀여운 스타일이었다. 그래도 덩치는 있고 몸은 좋은데 얼굴이 그랬다는 말, 어쨌든 그것보다도 그동안의 썸남들과 구분되는 점은 Z언니가 소개시켜 주지 않아도 절대 남에게 공개하고 싶지 않은 막장 상태의 내 방에 들어오려 시도하며 스스로 소개해왔다는 점이다.

2. 오늘 만난 고객 중 B양이 있는데, B양 하면 그동안 사무실에서는 단연 그 이름이 제일 화제가 되어왔다. 불어 이름인데 이게 모음이 자음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보니 불어를 배운 적이 없는 사무실 식구들은 발음하기 조낸 난감했던 거다. 그나마 불어를 깔짝대본 나는 이렇게 발음하는 거라고 고집을 부려왔는데, 어쨌든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우리 사무실에 오는 불어이름을 가진 흑인의 경우는 대부분 아이티 출신 영어가 서투른 사람이다 보니 그런 비슷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처음에 봤을 때는 얼굴도 예쁘고 스타일도 좋아서 기분이 좋았는데, 일 다 보고 마무리 인사를 하는 시점에 가서 비로소 좀 한가한 생각이 들 타이밍이 되니까 아 이건 미국 시점이라면 절대 게이-레즈비언 패션이구나 싶은 거다. 함께 B양을 만났던 J언니도 레즈인 거 같다고 동의했다. 근데 진짜 너무 친절하달까, 인상이 너무 좋아서 만나서 이야기를 했다는 거 자체가 너무 좋았다.

3. 오늘 점심은 사무실 건물 일층에 있는 델리에서 호밀빵 + 파스트라미 + 사워크라우트 + 러시안드레싱 = 루벤 샌드위치랑 코울슬로를 사먹었는데, 뉴욕에 와서 사먹은 점심 중 제일 맛있었던 것 같다ㅠㅠ 아 행복했어

4. "0.3% of Saharan solar energy could power Europe." 이라고 HSBC 은행 광고에 쓰여 있었다. 이것 저것 많은 게 떠올려지는 말이다.

2011 / 2 / 김소피

사실 같이 일하는 사람 중 아무도 여길 모르니까 (한사람은 주소를 알긴 하지만) 하는 말이지만, 이직이랄 것까지도 없지만 서서히 일을 옮길 생각을 하고 있다. 올해 들어서면서부터 시기를 재기 시작한 거긴 한데 갑자기 현실감 만땅으로 얘기가 급물살을 타게 된 거는 한 리크루팅 펌의 연락 때문인데, 아직 뭐 제대로 된 이야기도 없고 말그대로 말만 있는 상태이긴 하지만 그래도 옮길 생각을 본격적으로 하니까 생각보다도 더 질척해졌다. 내가 시작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내 보스 변호사를 까 온 건 알 사람은 다 알 테지만, 그래도 인간적인 매력이 없는 사람이 아니니까 생각보다도 더 보스를 좋아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그 것 하나로 이렇다 저렇다 할 결정을 내릴 정도까지는 아니다. 어쨌든 그런데 오늘 G양이 일을 그만 뒀다. 이로써 내가 시작할 때 일하고 있던 사람 중 지금도 있는 사람은 단 세 명?이 되었다. 한 대여섯 명 정도가 그만 둔 것 같다. 그 중 몇몇은 일 년 넘게 일해서 일에서나 보스와의 관계에서나 고참인 사람들이었다.


2011 / 2 / 김소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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